요한계시록 10:7 일곱째 나팔소리

2014년 8월 17일 일요일



신천지 영분별- 개신교의 부패성




 
 
부패한 종교세계와 새 시대를 알리는 신천지
 
 
기독교인들은 성경이 말한 말세를 불신자들의 세상으로 잘못 알고 있으나
 
성경이 말한 종말(말세)은 기독교의 종말을 말한 것이다.
 
 
 
 
신천지, 광복절을 보내며....
 
 
 


지난 8월 15일 광복절을 보내며 참된 광복의 의미.....
빛의 회복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나라 국화 무궁화의 의미도 다시 한번 새겨보게 되었습니다.
김영미 시인의 가슴 뭉클한 무궁화의 의미를 .....!!



1. 무궁화 시의 의미
http://youtu.be/LPrSxK37sTE

 2. 무궁화 -김영미
http://youtu.be/iG86ZO_XHik



무궁화(無窮花 )
                          김영미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땅이여 들으라
온 땅이여
울부짖어 외쳐라

유구한 역사 속
쫓고 쫓기어
단두대 위
핏빛으로 물들이어
목이 베 이여 핀 꽃
무궁화여!

아침에 피어 저녁에 지는
순국(殉國)에 역사를 따라 나
핏빛으로 물들어 핀
경술국치(庚戌國恥)의 무궁화여!

민족의 얼을 유린(蹂躪)한
조선교육령에도
신사참배(神社參拜)에도
거짓도 흠도
티도 없이 정절(挺節)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여 핀 꽃
무궁화여!

순국선열의 피 값으로
정절(挺節)을 지켜
순백의 순결한 꽃으로
핀 무궁화여!

광야를 울려
겨울에서 봄으로
태극기를 휘날려

33인의 얼을 따라난 손병희에서
유관순에서 
님의 침묵에 한용운에서
105인 사건 연루(緣累)양전백에서
서대문 감옥에서 고문 사 한 양한묵에서
한성순보 기자 오세창에서

대한 독립만세의
열여덟의 순결한
꽃 무궁화여

남대문에서
만주로
상하이에서
하얼빈으로
조선 총독부까지
한일합방 [韓日合邦]에서
을사조약 [乙巳條約]까지

독립만세를 올려 목메게
불러 보고 싶었던 이름
무궁화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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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국치(庚戌國恥): 
1910년 8월 29일,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국권을 상실한 치욕의 날을 이르며
 일제가 대한 제국에 통치권을 일본에 양여함을 규정한 한일 병합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이를 공포한 경술년(1910년) 8월 29일을 일컫는 말이며 국가적 치욕이라는 의미에서 경술국치(庚戌國恥)라고 부르며 일제는 조선의 국권을 침탈한 것에 대해 자신들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한일합방(韓日合邦), 등의 용어를 썼다.
이를 국권 피탈(國權被奪)이라고도 한다.

민족말살정책:
1911년 8월 "조선교육령"을 제정 공포하고 이른바
 "황국신민(皇國臣民:일본 국왕의 백성이라는 뜻)"의식을 불어넣으려고
 "동방요배(東方遙拜)"라 하여 국왕이 있는 동쪽을 향하여
 "최경례(큰 절)"를 하게 하고, 또 ‘황국신민의 맹세’를 외게 하며,
 "단발령" “신사참배(神社參拜)"의 강요,
한국어 교육의 금지 등으로 시작하여 민족말살을 위한 식민지 교육을 단행

군자의 나라: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진다고 하여, 유훈화 초조 생춘사라고 하며
7월부터 10월까지 100여 일간 계속 피므로  무궁화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다.
  학명은 Hibiscus syriacus L.이다.

 [韓日合邦]한일합방 :
 1910년(융희 4) 8월 29일 한일합방조약에 의해 한국의 통치권을 일본이 빼앗은 일. 일본에서는 <한국병합>이라고 한다. 1905년 을사조약 [乙巳條約](제2차 한일협약)으로 한국을 보호국화하고 통감 정치를 실시했던 일본은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이토(伊藤博文)를 죽인 후부터 한국의 주권을 완전히 빼앗고 식민지화하려는 계획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현재)
오늘날 민족의 수난과 억압 탄압에서 핀 나라의 꽃인 무궁화가 거의 사라져 보이지 않자 무궁화의 날을 지난 2007년도 부터 대한민국의 나라 꽃 무궁화를 기념하여 민간단체에서
나라 꽃 무궁화의 뜻을 살리자는 취지로 제정한 날이 바로 무궁화의 날이며
기념일은 8월 8일이다  8월 8일로 제정되어진 이유는 숫자 8을 옆으로 누이면
나오는 무한대 기호가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하다는 뜻의 "무궁(無窮)" 과 뜻이 통한다
하여, 지난 2007년부터 8월 8일을 무궁화의 날로 정한 것이다

( 33인----손병희 이승훈 한용운 권동진 권병덕 김병조 김완규 나용환 나인협 박동완 백용성 박준승 박희도 신석구 신홍식 양전백 양한묵 오세창 오화영 유여대 이갑성 이명룡 이종일 이필주 임예환 정춘수 최진 최성모 홍기조 홍병기 김창준 길선주 유관순)

[출처] 시인 김영미 시집 뜸북새 중에서 무궁화

신전지 각 종교 중 약속을 믿을 수 있는 경서

각 종교 중 약속을 믿을 수 있는 경서
 
본문 : 요일 4:1-8
 
 
지상에는 수백 가지 종교가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을 기준하고 있다. 그리고 자기의 종교가 제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과연 어떤 종교의 경서가 믿을 만한 내용이 있는 것일까? 먼저 신도수가 많은 종교 단체인 기독교부터 살펴보자(기독교는 가톨릭교, 개신교, 성공회, 정교회, 반유대교 등이 있음).
 
기독교의 역사는 6천 년이며, 아담 때, 노아 때, 모세 때, 사사(士師) , 예수님 때가 있었고, 계시록 때가 있다. 기독교의 경서인 성경은 하나님으로부터 듣고 보고 기록한 것으로 구·신약 66권이며, 기록자는 수십 명이다. 기록자들이 하나같이 하나님으로부터 듣고 본 것을 기록하였기에, (성경)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 이 말씀은 내용으로 보아 크게 역사, 교훈, 예언, 성취가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약속하신 것은 모세 때 이루셨고, 구약 선지자들과 약속하신 것은 예수 초림 때 다 이루셨다(19:30). 신약 계시록은 예수께서 예언(약속)하셨고, 이는 재림 때 이루신다(21:6).
약속한 예언과 그 성취를 볼 때 첫것이 부패할 때 허물고 다시 새것을 창조하셨다(8:7-13 참고). 예를 들면, 아담 세계가 부패로 끝나고 다시 노아 세계를 창조하셨고, 노아 세계가 부패로 끝나고 다시 아브라함의 모세 세계(육적 이스라엘)를 창조하셨으며, 모세 세계가 부패로 끝나고 다시 예수님 초림 세계(영적 이스라엘)를 창조하셨고, 오늘날 예수님 초림 세계가 부패로 끝나고 다시 예수님 재림 세계(영적 새 이스라엘)를 창조하셨다. 이것이 6천 년 간 기독교 성경이 말한 예언과 그 성취이다. 그러나 모세와 예수님은 출현 전에 약속하신 인물이었다.
 
불교와 석가의 역사는 약 2,600년으로 보며, 불교도 몇 가지(종파)로 나누어져 있다. 그러나 경서는 대개 같으며, 석가는 왕의 아들 왕자이다. 이 석가는 종교에 예언된 인물은 아니다. 석가가 종교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이유를 알기 위해 조물주를 찾아 나온 것이 그 계기였다. 석가가 하늘의 음성을 듣고 기록한 것이 불경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 고종 때 불경을 종합한 대장경(大藏經)을 간행하였는데, 그 판 수가 8만 편이라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라 하며, 이는 석가도 그 제자들도 보아도 깨닫지 못한 내용들이다. 이러한 일은 비단 석가뿐만 아니라, 기독교 성경에 기록된 예언에 대하여 그것을 기록한 선지 사도들도 깨닫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불교 신도(信徒)들 중 기록된 팔만대장경의 뜻을 아는 자는 하나도 없다.
 
하나님은 생로병사의 비밀을 알고자 한 석가에게, 500년 후 예수가 오면 장래 일을 예언해 줄 것을 알게 하셨다. 석가에게 장래 일을 알게 하고자 할 때, 하나님은 그것을 이전 선지자들에게 약속했기에 새삼 말할 필요는 없었다. 우리 나라 삼성재단 창립자 이병철 씨도 가톨릭교 박 모 신부에게 인생, 종교 등에 대한 24가지 물음을 물은 바 있고, 이 물음에는 생로병사에 해당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박 모 신부는 당시 답하지 못했고, 24년 후 가톨릭대 교수인 차 모 신부가 답하였으나(책으로 출간) 그것은 엉터리 답에 불과했다.
 
석가의 제자들은 석가 후 약 500년이 지나 예수님이 오셨을 때 예수님에게 계시 말씀을 들어야 했다. 이 불제자(佛弟子)들은 자기들의 아는 지식만으로 불교를 그들의 권세와 함께 지금까지 연장시켜 왔다. 이는 기독교 곧 가톨릭교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2천 년 전에 이미 예언하셨고(24, 요한계시록 참고), 12세기의 가톨릭교의 한 예언가도 자신의 사후(死後) 112번째의 교황이 마지막 교황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으나1) 이 일로 교인들의 소동이 일어날까 두려워 입을 다물고 있다고 본다.
 
이슬람교는 예수님 후 약 600이 지나 창립되었고(AD 610년 창립), 오늘날 그 역사가 1,400년이 되었으며, 경서의 내용은 아담, 노아, 모세 세계 등의 일부를 말했고, 예언·계시 등의 말이 있으나 하늘의 내용이 아니며 땅 곧 세상의 이치였고, 예언과 그 성취에 대한 약속은 없었다. 착하고 선하게 행해야 한다는 내용이 그 대다수였다. 그러나 이는 사람의 기본 도리이다. 이들이 선하고 착한 일에 대해 설명한 것은 명심보감(明心寶鑑)2)보다도 못하며, 이들은 구도(求道)를 한다면서 분쟁을 일삼고 있고, 분쟁으로 나라가 갈라진 곳도 있으며, 현재 24개의 나라에서 많은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인들의 조상은 본래 이스라엘의 후손 곧 아브라함의 아들의 후손이요, 사라의 여종 하갈의 자손(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의 자손)으로서, 약속의 아들, 본처(사라)의 아들, 이삭의 자손이 아니다. 코란(Koran : 이슬람교의 경전)에 기록된 역사는 아담 때로부터 예수님 때까지의 역사에서 딴 것이며, 언제 이룰 예언이며 그 약속한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도 없고, 또 예수님 이후에 약속한 예언이 없다.
하나님이 아브라함 약속하신 것에 대한 성취, 모세의 출애굽의 노정도 없으며,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도 그 성취도, 예수님의 예언과 그 성취도 없다. 코란 경서를 통해 믿을 만한 내용은 찾아볼 수가 없다. 코란을 기록한 한 사람3)의 의논일 뿐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이룰 약속이 있어야만, 그 내용을 보고 이를 믿고 지켜야 한다는 믿음이 있을 것이다.
 
힌두교의 내용도 이슬람교의 경서같이 한 마디로 요약하면 선하고 착하게 행해야 한다는 내용 외에 어떤 약속을 찾아볼 수 없다. 이 외에도 많은 경서가 있으나, 말할 가치가 없는 것들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그 말씀을 믿는 것은, 성경에 생로병사의 이유와 이(죄로 인한 고통과 죽음의 문제)를 회복할 내용과 또 후세 사람들에게 이루어질 장래사 등의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약속한 것이 육하원칙에 입각하여 이루어진 것을 바탕으로 하여, 새 언약으로 말한 예언도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장래의 일에 대한 예언도 그 성취도 육하원칙에 입각하여,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했나라는 순리에 따라 말씀하고 증거하고 있다.
 
그리고 성경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받은 사람의 모습을 비롯하여, 죄로 인해 죽음과, 창조주께서 떠나신 이후 죄 사함과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하심과, 회복하기 위한 재료와, 회복받기 위한 사람이 지켜야 할 약속과, 창조주 하나님이 자기 사람(하나님의 가족)과 함께 사심과, 그 때의 삶의 가치 등이 설명되어 있다.
 
무엇으로 어떻게 본래와 같이 회복되는가? 현재의 사람은 누구의 씨로 나 어떤 신이 주관하는가? 지금 나는 누구의 신이 함께하고 있으며, 누구의 모습인가?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선하고 착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씨로 나야 하는가?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뜻과 일은 어떤 것인가? 왜 그리 되어야 하는가?
 
종교가 수백 가지로 갈라진 것은 신의 뜻인가, 사람의 뜻인가? 누구나 다 하나님을 기준으로 신앙한다고 한다. 그러나 경서의 내용도 다르고 그 행동과 교법도 다르다. 이 어찌 한 하나님의 뜻이란 말인가? 이는 오랜 세월 속에 종교가 변질되었고, 부패되었다는 증거가 확실하다. 이 때 모든 종교가 종교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되는 것이 원칙이라 할 것이다.
 
초림 예수님은 평화의 사자로 왔고, 평화의 일을 선민 이스라엘이 알았으면 좋았을 뻔했으나 평화를 받아 주지 않았고(52:7, 2:14, 19:38-44 참고), 오히려 예수님을 이단이라며 죽였다, 당시의 이스라엘 목자들이. 오늘날도 그 때와 같이 예수께서 교회를 위해 보내신 사자는 평화를 외치며 평화의 일을 하고 있지만, 한기총은 전쟁을 선포하고 있다. 평화를 위해서는 국경도 인종도 종교도 사상도 초월해야 한다. 그리고 원수도 사랑해야 한다.
 
기독교 성경이 말한 말세에 대한 예언을 요약해 본다. 기독교 경서에 대한 말세론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 종교의 경서에는 말세에 대한 예언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말세는 종교(기독교)의 종말을 말한 것이며, 불신 사회의 종말을 말한 것이 아니었다. 종교 말년에는 종교가 부패하게 되고, 하나님께 배도함으로 하늘에 속한 해··별 같은 종교인(선민)이 땅()으로 떨어진다고 하였다. 이 때를 노아 때, 롯 때와 같다고 하셨으니(24:37-39, 17:26-30), 이는 종교 세계의 멸망을 말한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은 후에 주께서 천사와 함께 오시어 추수하고 인치는 일이 있고, 하나님의 새 나라를 창조한다고 하신 것이다(24:29-31). 이 일은 이 때의 배도자들과 멸망자들과 구원자를 알리고 있으며(예언), 이를 알린 것 기독교 경서이다. , 이 말세의 사건을 알린 것이 신약이며, 계시록의 사건들이다. 이 때 구원받을 일과 피난처를 알려 주셨고, 이후의 새 나라에 대해 설명하신 것이다.
 
성도들은 어떤 경서를 원하는 것인가? 기독교 경서인 성경이 신앙인에게 필요한 것은 성경 안에 기록된 내용이다.
사람은 누구나 죄가 있고, 죄의 유전자로 났다. 이 죄가 해결되어야 하고, 배도자·멸망자를 알아야 하며, 구원자와 재창조에 소속되어야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 영생을 누릴 수 있다.
 
이를 말한 예언과 이 예언이 성취된 내용이 없는 경서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 곧 계시가 아니며, 사람이 도용(盜用)하여 만든 책에 불과하다.
죄를 사할 능력이 없다면 구원자도 아니며, 죄를 사할 재료가 없다면 구원을 알려줄 경서도 될 수 없다. 새 시대 창조에 관하여 설계된 경서가 없다면, 신앙인들은 세상 그대로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도 세상도 새롭게 할 수 있는 약속된 료와 창조된 설계가 있어야 참 경서라 할 것이다. 불교도, 이슬람교도, 힌두교도, 기타 종교도 그 경서에는 이 같은 내용이 없다. 그러므로 각종 종교 경서 중에는 기독교 성경이 제일 믿을 만한 내용이며, 이 같은 내용이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각 종교의 경서를 한 곳에 갖다 두고, 위의 내용에 대하여 여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잘못된 길로 달려간다 하여 목적지에 가는 것이 아니다. 정도(正道)로 가야 목적지에 갈 수 있다.
석가 후 약 500이 지나 예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다 할지라도, 그 때로부터 2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야 비로소 그 약속인 새 언약의 삶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한 삶이 이루어지는 곳은 어디인가? 이 곳은 계시록 3:12같이 하나님과 예수님과 천국이 온 곳이며, 새 하늘 새 땅 곧 신천지이다(21). 이 곳은 송구영신 호시절(送舊迎新好時節)4)이며, 삼풍지곡5)(三豊之穀, 2:17 ‘감추었던 만나’) 곧 영생의 양식을 가지고 온 것이며, 태고이후 초락도(太古以後初樂道)6) 곧 계시록이 이루어진 곳이며, 사말생초 신천지(死末生初新天地)7)이다. 아멘!



1) 아일랜드 아머의 대주교였던 성() 말라키 오모게어(1094-1148)는 자신의 사후(死後) 112번째
   까지의 교황들의 계보를 예언했으며, 112번째 교황이 마지막 교황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현재의 교황은 프란치스코이며, 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로 말라키가 예언한 그의 사후 112번째의
   교황에 해당한다.

2) 고려 시대 어린이들의 학습을 위하여 중국 고전에 나온 선현(先賢)들의 금언(金言명구(名句)
   편집하여 만든 책
3) 코란의 저자는 이슬람교의 창시자요 예언가인 무함마드(Muhammad, 영어명 마호메트(Mahomet)
   이며, 유일신 알라(Allāh)의 계시를 받아 기록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4) 옛것을 보내고 새것을 맞이하는 좋은 시절
5) 세 가지 풍족한 양식인 불··이슬, 곧 하나님의 말씀
6) 태고 이후(역사 이래) 처음 있는 즐거운 도(말씀)
7) 죽음이 끝나고 삶(영생)이 처음 있는 신천지